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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지명 번역의 맛

지명(地名)은 말 그대로 땅의 이름이라는 뜻입니다. 땅 이름은 고유명사이기에 다른 지명과는 구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명을 소개하고나 번역할 때는 무미건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지역의 맛을 살려주어야 합니다. 한국의 지명을 들으면 서울이 다르고, 대전이 다르고, 대구가 다르고, 부산이 다릅니다. 위치도 특징도 다릅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명에서 느끼는 감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노래 가사나 드라마, 또는 문학 작품에서도 지명은 도드라지게 다가옵니다.   앞에 언급한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은 어떤 대중가요에 등장하는 도시의 순서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도시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 한국의 도시 이름을 물어보면 주로 등장하는 이름일 겁니다. 그런데 외국인의 경우는 한국인과는 조금 다르게 우리 지명을 기억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교재에 보면 대전, 대구보다는 인천이나 경주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천은 공항이 있기 때문이고, 경주는 물론 우리 역사의 주요한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교재에는 설악산이나 제주도가 대도시보다도 먼저 나옵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학습자의 경우엔 단순히 도시의 이름뿐 아니라 도시의 특징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와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까지 알아야 번역이나 통역에서도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문화 번역의 맛이 살아나는 겁니다. 문학작품이나 드라마에서도 지역의 특성을 알면 이해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경주가 어떤 도시인지 모른다면 경주에 가고 싶다는 말을 정확히 해석할 수 없을 겁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도 경주 남산에 올라가고 싶습니다. 경주 남산은 그냥 산이 아닙니다. 신라의 불교 유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살아있는 고고학의 현장이며, 불교 신앙의 현장입니다.   한국어를 잘 아는 외국인도 도시의 이미지, 특징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얼마 전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교수들과 한국 지명의 특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명은 많이 알고 있었지만, 그곳의 특성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많았습니다. 한국어를 무척 잘 아는 사람들도 지명을 번역할 때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음식의 예를 들어 볼까요. 춘천 하면 닭갈비나 막국수가 생각나야 할 겁니다. 전주하면 비빔밥이 생각나겠죠. 천안은 뭐가 생각나나요? 호두과자가 떠올라야겠지요. 천안에는 호두가 유명합니다. 그래서 호두과자도 발달하였을 겁니다. 천안 쪽의 휴게소에 가면 당연히 호두과자를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의정부라고 하면 부대찌개가 생각나겠지요. 의정부에 미군기지가 있는 것과 부대찌개의 연관성도 떠올라야 할 겁니다. 다른 도시의 음식은 뭐가 있을까요? 특산물도 지명과 관련하여 기억할 내용입니다. 나주는 배, 대구는 사과, 공주는 밤, 성주는 참외, 가평 잣이 유명합니다. 완도는 김, 통영은 굴, 포항은 과메기, 벌교는 꼬막이 유명하지요. 영광의 굴비, 상주의 곶감, 제주의 옥돔, 흑돼지 등 기억할 내용이 많습니다.   요즘에는 그밖에도 다양한 기억 거리가 생겨났습니다. 전주는 한옥마을로 유명하고, 정동진은 모래시계로 유명합니다. 대전은 성심당이라는 빵집이 대전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대전역에 가 보면 많은 사람이 성심당 봉투를 들고 있습니다. 한편 용산은 예전에는 미군기지 등이 유명하였으나 이제는 대통령실이 있는 곳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지명의 특성도 이렇게 변화를 겪습니다. 제가 어릴 때 살았던 서울 남산, 용산 이태원의 경리단은 전혀 다른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저에게 용산은 고등학교 이름입니다. 저는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지명을 보면서 어떤 상징이나 특징,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번역을 문화적으로 할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 사는 사람의 감정이나 생활상까지 함께 담을 수 있을 겁니다. 어떤 곳에 가면 지명과 함께 그곳의 특산물, 특징을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지명 공부도 중요한 한국어 공부인 셈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지명 번역 한국 지명 가면 지명 우리 지명

202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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